20113, 대학교에 입학했다. 사람들과 생활하는 것이 예전 같지가 않다. 재미 없다. 집에 가고 싶다. 20114, 처음 필로트 대자유포스터를 발견했다. 1년 뒤 20122, 다시 필로트 대자유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고민 없이 신청했고 1학기가 끝날 무렵부터 필로트 참가자들과 모임을 갖고 조를 나누어 814일 출국했다.


그렇게 기대감 없고 설레임 떨어지는 여행을 오직 나만의 휴식을 위해 시작했다. 20시간에 걸친 비행뒤에 바로 파리에 있는 캠핑장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본 파리는 사진속에서 본 멋진 도시는 아니었다. 넓은 도로 평평한 언덕들, 그리고 많은 나무, 높은 하늘. 그리고 내 상황은 머리도 감지 못하고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이라 찝찝하고 몸도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다.


짧은 OT를 가진 뒤에 대충 씻고 나현이와 민경이, 나 이렇게 3명이서 파리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대학생을 만난 뒤에 집으로 돌아가는 건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우리끼리 파리를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때 정말 무서웠다. 영어도 수준급이 아니고 불어도 잘 못해서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소매치기 당할 수도 있고, 길을 제대로 못 찾아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 우리끼리 여행하겠다고해서 허락해 준 단장님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처음에 호기심으로 셋이 파리시내에 두 다리로 서 있을 땐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들떠있었는데 두려움이 더 커져버린 이상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둘을 내 팔에 꼭 끼우고 사진을 찍는다고 팔을 빼면 조급해하고 화를 냈다. 무사히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내렸을 때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음고생을 하고 돌아오니 우리조 사람들을 보자마자 너무너무 기뻤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언니 오빠들은 야경을 보러 나갔고 우리셋만 캠핑장에 남게 되었다. 그날 어쩌다 우리셋은 더 친해졌고 의지할 곳이 생겨서 나머지 날들 동안 더 마음 편히 여행에 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둘째날부터 본격적으로 파리에 명소들을 찾아다녔다. 루브르박물관, 튈르리공원, 오르세 미술관, 몽쥬약국, 퐁피두센터, 몽마르트언덕, 유람선, 에펠탑, 개선문, 샹젤리제거리, 사이요궁 등 이름만 들어도 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곳은 다 돌아다녔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날은 딱지 끊긴 날과 나현이 생일파티였다.


프랑스에는 1000개가 넘는 성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네비게이션에 찍어서 갔다. 계속 갔다. 꽤 오랜 시간을 간 것 같았다. 그러다 배가 고파져 사먹었던 피자 두판을 정말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자다 일어났는데 갑자기 속도위반딱지를 끊겼다. 그때 나온 음악은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 지금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벌금을 현금으로 내고 성도 찾지 못하고 다시 네비게이션에 캠핑장을 찍고 돌아는 중이었는데 도착지에 가보니 성이 있었다. 그땐 우리끼리 네이게이션에 귀신이 씌인 게 아니냐며 의아해 했지만 아직도 성을 찾아가는 동안 본 멋진 풍경과 성에서 있었던 일이 영상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나현이는 필로트여행 기간중에 생일을 맞았다.


우리조였지만 나와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고 우리는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조원들끼리 나현이생일을 챙겨주자는 얘기가 나왔고 나도 흐름에 맞춰서 생일선물을 준비했다. 썩 잘 맞지는 않았지만 나현이와 나는 미운정이 조금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당일날 나와 나현이랑 선주언니랑 돌아다니는 동안 다른 조원들이 생일을 준비하기로 한 뒤 잠시 따로 여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따라 나현이가 너무 와이파이에 집착했다.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은 계속 서서 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동해야 되는데 계속 폰만 붙잡고 있는 애한테 신경질을 냈다. 1시간동안 나현이는 약국앞에 서서 와이파이하고 선주언니랑 나랑만 그 근처를 둘러보고 만나게 되었다. 나현이는 울상이었다. 미안했지만 신경질을 낸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야경을 보고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안에서 계획에 따라 풍선을 열심히 불고 나름대로의 깜짝파티를 준비하게 되었다.


밤에 밥을 먹다가 자정이 지나고 범진오빠의 실수에 의해 우연히 생일파티가 시작됐다. 다같이 한목소리로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주었다. 나현이는 울었다. 그리고 서러운 목소리로 오늘 자신의 서운한 감정을 말했다. 생일축하 같은 거 바라지도 않았지만 낯선 곳에서 친구들이 생일축하해주니까 연락을 하기 위해서 와이파이를 찾아다녔던 거라고 말했다.


진짜 미안했다. 내 감정만 생각하고 내 입장만 생각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나현이한테 잘 대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룸메이트였던 나현이에게 그날 밤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까칠한 내 성격과 신경질적인 행동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모습을 최대한 노력해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잘 안맞는 나현이와 나는 서로 맞춰가기로 얘기를 했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은 매일 연락하는 사이다. 아마 그때부터 내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까칠하고 반응없는 내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에서는 똑같은 환경 속에서는 변하기가 힘들었는데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들 속에서는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앙숙 같았던 김나현 덕분에.


그렇게 파란만장한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고 파리에서 인터라켄으로 넘어갈 무렵 더이상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섭지 않았다.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것도 익숙해 졌고 부딪히면 “파흐동” 길을 알려주면 “맥시”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와이파이가 계속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접고 24시간마트가 열려있다는 생각도 접고 종업원들이 재빠르게 움직여 줄거란 생각도 접고 ‘얼음은 스타벅스에서’, ‘물은 사먹어야지’하며 무단횡단에 익숙해져 파리지앵에 매력을 느꼈다.


인터라켄으로 이동할 때는 모든 조가 함께 이동했다. 무전기를 들고 서로의 상황을 말하고 8대의 차가 하나처럼 이동할 땐 마치 우리가 영화에 출연하는 듯한 기분에 들떠 있었다. 케이팝을 들으며 신이 나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지만 이내 우리는 곯아 떨어졌다. 그리고 장시간이동을 하고 일어나보니 또다른 캠핑장에 도착했다. 어두운 밤이었다.


비도 내리고 춥고 이런 생활이 처음이다 보니 몸이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때 단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편한 여행을 생각한다면 그냥 집에서 쉬어.” 그말이 떠올랐지만 내몸은 밖으로 나갈 시늉도 하지 못했다. 진수오빠랑 현승오빠 둘이서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가서 텐트를 쳤다. 정말 미안했다.


그렇게 힘든 하루가 지나가고 주어진 하루 동안 레포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캐녀닝, 스카이 다이빙, 패러글라이딩 중에서 나는 민경이와 1조 조원 4명과 캐녀닝을 했다. 처음으로 우리조 사람들과 떨어져서 하는 활동이었다. 처음엔 조금 긴장되고 어색했지만 그런 불편함을 곧 없어졌다. 몸에 딱 붙고 냄새 나는 해녀복과 특이한 이름이 적힌 헬멧을 쓰고 얼음장 같은 물속으로 한번 두번 빠질 때마다 점점 보기에 좋지 않은 모습으로 사진에 남겨졌고 우리는 실시간으로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캐녀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니 우리조 사람들은 다른 여행을 하러 이미 떠난 뒤였다. 그래서 1조와 함께 뮈렌을 구경하고 저녁으로 퐁듀를 먹었다. 사실 날씨가 그렇게 좋지 못해서 뮈렌에서 봤어야 할 예쁜 풍경보다는 발이 동상에 걸릴 뻔한 기억과 사진을 자꾸 찍던 기억뿐이다. 퐁듀는 색달랐다. 우리나라의 샤브샤브와 비슷했던 고기퐁듀, 과일퐁듀는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치즈퐁듀가 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알코올냄새와 상한 맛이 못 먹을 맛이었다.


1조와 여행하는 것이 정말 좋았다. 돈독한 1조모습도 보기 좋았고 잘 챙겨주어서 고마웠다. 그런데 우리조 언니 오빠들을 만나니 왜 그렇게 눈물이 나고 기뻤는지 모르겠다. 그 편안함은 한국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설레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가족 외에 다른 사람에게서 그런 편안함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하고 나 자신도 놀랐다.


그 다음날은 날씨가 좋아져서 전날 패러글라이딩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시 기회가 생겼다. 덕분에 그동안 인터라켄을 좀 더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가까이서 본 백조다.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뚱뚱하고 난폭했지만 민재오빠 덕분에 백조가 물면 피난다는 사실도 알게된 날이었다.


우리가 있던 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니 다른 시각에서 호수를 볼 수 있었는데 그때 그 호수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짧은 인터라켄 일정이었지만 조에 대한 애정이 생겼고 그 계기로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열렸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유럽에 있었지만 그냥 지나보냈던 많은 순간들에서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되새기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어떤 것을 보게 될지 더욱 기대했었다.


하지만 로마는 내 기억에 최악의 도시로 남았다. 프로 로마노, 팔라티노, 콜로세움, 진실의 입, 베네치아 광장, 트레비 분수, 바티칸 박물관, 싼 피에트로 성당, 판테온 정말 볼 건 많았다. 그런데 많은 것을 정해진 시간에 보려고 하다보니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봐야한다는 부담감과 더운 날씨 때문에 너무 고생을 했다. 게다가 캠핑장으로 편하게 돌아간 날이 없어서 더 힘들었다. 로마캠핑장은 역에서 캠핑장까지 셔틀버스를 타거나 조장이 데리러 와야지만 돌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한번은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마트에서 4조 차를 만났다.


탈 수 있는 사람만 타고 나머지는 역에서 오빠를 기다리는데 서로 엇갈려서 꽤 긴 시간동안 역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또 한번은 연락할 수 있는 폰이 없어서 이대로 역에서 자나했다. 다행히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갔지만 국제미아가 되는 줄 알고 마음고생한 건 잊혀 지지가 않는다.


우리셋은 놀란 마음을 잡고 세탁기를 돌린 뒤 예쁘다는 수영장을 찾아가 보았다. 밤에 켜진 수영장의 조명은 고생한 우리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마음이 편해지고 유럽에 온 뒤 처음으로 가족생각이 난 날이기도 했다. 비록 수영복을 입고 놀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발만 담그고 셋이서 수다 떨기엔 좋았다.


수다를 떨면서 우유를 사먹었는데 그 고생 뒤에 먹은 우유라 그런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처음으로 가족회의를 가졌다. 서로가 힘든 점을 얘기하고 서로 하고 싶었던 말을 하는 시간이었다. 로마는 우리 조원들 모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곳이었다. 그날 우리는 여태까지 여행이 아닌 관광을 하려고 하다보니 지친 것 같다는 판단에 앞으로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대화가 중요하다고 많이 들었고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대화의 힘이 크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 되었다.


덕분에 로마이후의 일정은 정말 여행다운 여행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렇게 힘든 로마 여정을 끝내고 베네치아로 이동했다. 베네치아에서는 피렌체로 이동해서 수형언니를 따라 정말 맛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나는 원래 고기를 먹을 때 밥이랑 같이 먹는 걸 좋아해서 스테이크를 즐겨 먹진 않는다. 그런데 그곳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반해 버렸다. 빨간 핏물이 흐르는데도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고 계속 먹고 싶고 4명이서 먹기에 180g이 적게 느껴졌다.


배가 좀 부른 상태에서 나온 해산물스파게티는 더 대박이었다. 한국에서도 스파게티를 자주 먹는데 그 레스토랑의 해산물스파게티는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맛이고 무의식적으로 미소가 나오고 눈이 커지는 그런 맛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3.14조는 베네치아의 야경을 둘러보면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여유롭게 산책을 했다. 그날은 마침 1조 지희언니의 생일이었는데 아침부터 몰래카메라를 해준다고 조원들끼리 이야기하고 연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야경을 보다가 1조 막내 2명이 길을 잃어서 잠시 행복이 멈췄다. 다행히 가현이랑 소은이가 길을 찾아 왔지만 언니 오빠들은 걱정을 많이 해서 분위기가 즐겁진 못 했다.


그런 일이 있다보니 예정대로 깜짝생일파티를 할 시기를 놓쳤고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중간에 주유소에서 정성만은 최고인 깜짝생일축하를 해주었다. 반전이 있는 생일이라 그런지 나는 1조 조원도 아니었는데 생일축하노래를 부르면서 이 즐겁고 행복한 순간에 내가 바로 옆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필로트가 아니었으면 평생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 사람들인데 같은 생각, 같은 활동을 하면서 이렇게 동질감을 느끼고 같은 것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았던 밤이었다. 다음 장소는 인스부르크캠핑장이었다. 작은 캠핑장이었지만 만년설이 있는 산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7기 전체모임을 가졌었다.


각조에서는 맛있는 요리는 했다. 특히 선주언니가 만든 닭도리탕이 정말 맛있었다. 선주 언니는 한국에서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솔직히 믿을 수가 없다. 단장님도 반한 한국맛이다. 로마에서도 김치찌개로 대박을 냈고 이번에도 대박을 터뜨렸다.


원래 저녁을 잘 안 먹는데 언젠가부터 선주언니가 준비하는 저녁이 기대되어서 매일매일 저녁을 챙겨 먹었다. 여튼 7기 단체모임을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놀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내가 술을 배웠다는 점이 참 큰일이다.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난 정말 한국에서는 술을 잘 안 먹었다. 술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필로트를 통해서 즐겁게 술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알게된 것 같아 좋았다.


단장님의 얘기가 끝나고 난 뒤 늦은 시간까지 대화하는 그룹이 많았다. 그날 우리 조는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 놓는 시간을 가졌다. 여행의 중반에 다 되어가는데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미안한 감정표현을 나중으로 미루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도 나중으로 미루다보니 서로에 대해 알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여행이 끝나기 전에 그런 얘기를 하고 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된 것에 다행이라 여기며 잘 마무리 되었다. 알면 알수록 나와는 다르다고 판단되고 그러면 피해 가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이해하게 되는 마음이 생기면서 내가 맞춰 가기도 하고 상대방이 나에게 맞춰가기도 하는 우리를 보면서 내가 왜 사는지 느끼기도 했다. 그게 사람사는 모습인데 나는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았으니 슬럼프가 더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결론도 나왔고 겨우 보름동안이었지만 단축시킨 인생을 내가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생각을 한 밤이 지나고 하이델부르크에 도착했다. 내가 가장 기대하던 체육대회가 기억에 남는다. 필로트에 대한 애정이 커지면서 다같이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주변을 구경하러 나간 사이 운영진과 나, 민경이 나현이는 장도 보러가고 요리와 게임을 준비했다.


꼬리잡기, 수건돌리기, 스피드게임, 돗자리게임 전부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열정적으로 참여해 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에 먹었던 수제비와 감자전은 정말 맛있었다. 한국에서 먹었던 어떤 수제비와 감자전에 비할 수 없는 맛이었다. 땡볕에서 고생한 식구들은 모두 맛있게 먹었고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우리들만의 이야기로 밤을 보냈다.


벨기에에서는 도착하자마자 쌍무지개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유럽에 와서 무지개를 2번 보았는데 그 날 본 무지개가 정말 컸다. 폰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다 찍히지 않아서 너무 아쉬웠다. 벨기에에서부터는 이제 곧 여행이 끝날 거라는 아쉬움으로 있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정말 1초처럼 지나갔다. 그중 해변에 갔던 1초가 좋았다. 한국에서는 한번도 친구들끼리 해변에 놀러가 본적이 없어서 그 경험은 나에게 더 소중하다.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한명 두명씩 바다에 내쳐졌다. 무서웠다. 나현이는 지은 죄가 많아서 빨리 물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별거 아닌데 왜 그렇게 즐거웠는지 모르겠다. 물에 한번씩 들어간 뒤 우리는 꼬리잡기도 하고 여왕피구도 했다. 살벌했다. 특히 영재오빠가 짱이었다. 물놀이를 하고 나니 정말 배가 고팠는데 뭐 사먹을 여유도 없어서 그대로 캠핑장에 돌아갔다. 안 먹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게 선주언니가 또 ‘대박라면’을 끓여줬다. 진짜 맛있었다.


씻지도 않고 먹는 뜨거운 라면은 자기차례가 되길 기다리며 서있던 우리조만 그 맛을 알 것이다. 밥을 먹고 저녁이 되자 동갑내기들끼리 모임을 가졌었다. 동갑모임도 마음이 편안한 게 이상하리 만큼 좋았다. 나는 중간에 잠이 들었지만 잠이 들 정도로 좋았다.


영국에서는 올림픽기간인 만큼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우리나라와 브라질의 경기가 있는 날 가현이와 민재오빠, 나랑 민경이와 나현이 5명이 돌아다녔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일본 음식점을 갔는데 오코노미야키가 정말 맛있었다. 일본에서 먹진 않았지만 가장 우리 입맛에 가까운 요리를 음식점에서 먹으니 감동이었다. 그리고 그날 민재오빠를 인정해줬다.


과학박물관에 갔다가 하이드파크를 거쳐서 펍으로 갔다. 올림픽경기장에 들어가서 응원하진 못했지만 필로트사람들과 한국사람들이 모여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브라질이 너무 축구를 잘 해서 심장이 덜컥덜컥 많이 떨어졌지만 그 분위기만큼은 최고였다. 특히 영재오빠의 지휘아래에 한국을 응원하는 노래를 할 때는 마음이 이상하게 뭉클했다.


그 다음날에는 차이나 타운에가서 마음껏 먹고 뮤지컬 맘마미아도 봤다. 버킹엄교대식도 봤는데 사람이 엄청 많았다. 그런데 그 앞에서 말이 얼마나 똥을 많이 싸놨는지 인상적이었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을 꼽자면 버킹엄교대식 때 만난 한국인 언니였다. 모델처럼 쭉 뻗은 키에 예쁜 얼굴에 분홍색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다니는 언니였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말을 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그 언니는 한달째 유럽을 혼자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혼자 다니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언니는 소매치기도 당한 적 없고 밤에 돌아다녀도 아무 일 없었다며 밝은 표정으로 얘기했다. 파리에서 처음 3명이서 떨어졌을 때 난 그렇게 걱정하고 불안해 했는데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걱정 없이 낯선 땅을 여행하며 다니는 언니를 잠시 몇초간 동경했다.


교대식이 끝나고 언니랑은 다른 길을 갈 때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언니에게 “나중에 봐요” 이렇게 말했다. 나와는 다르게 도전적이고 혼자서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언니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나도 이 여행이 끝나면 언니와 같은 내가 되기를 기대했다.


영국일정이 끝나고 프랑스 페깡에 도착했다. 3일밖에 안 남았지만 정말 더 믿고 싶지 않았다. 이 여행이 끝나고 한국의 집에서 자고 일어날 내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날은 일본과 한국의 축구게임이 있는 날이었다. 언니 오빠들은 게임 때문에 컴퓨터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도 그곳에 있다가는 밥도 못 먹고 기다려야 될 것 같아서 먼저 자리를 떴다.


저녁은 진수오빠가 쏘는 고기였기 때문에 빨리 먹고 싶었다. 그래서 밥을 얹히고 야채와 버섯을 미리 다 준비해두었다. 결국 언니 오빠 빼고 나현이랑 민경이랑 셋이서 먼저 조금 먹었다. 라면에 양파와 버섯을 넣었는데 그게 왜 그렇게 맛있는지. 유럽에선 진짜 한국음식이 너무 맛있다.


20으로 게임을 승리하고 나서 모두 모일 수 있었고 현승오빠가 구워준 고기와 양파, 버섯을 너무 맛있게 먹었다. 먹으면서 현승오빠는 숨은 보석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던 날이었다. 전도 잘 굽고 라면죽도 잘 끓이고 냄비밥도 잘 한다. 그리고 1조에서 만든 제육볶음도 정말 맛있었다. 매번 맛있지만 그날은 최후의 만찬이었다. 저녁을 실컷 먹고 본 페깡의 밤하늘은 정말 우주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곧 쏟아질 것 같은데 정지되어있는 별처럼 보였다. 별똥별도 엄청 많이 봤다. 평생 볼 별똥별을 다 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시골에서도 이렇게 선명하게 볼 수 없는데 하필 페깡캠핑장에서 날씨 좋은 밤에 있도록 해줘서 그 순간에 정말 감사했다. 나현이와 민경이와 나는 그냥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그리고 하늘을 보면서 얘기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 나진 않지만 그냥 웃고 떠든 기억밖에 안난다.


우리 모습도 웃기고 셋이 이러고 있는 것도 웃기고 그 상황이 즐거웠다. 마지막 파리캠핑장에서는 해단식을 가졌다. 해단식날 양이 적었지만 맛있었던 찜닭이 생각난다. 마지막으로 7기전체가 유럽에서 모여 가지는 시간이었다. 조장오빠들이 앞에 나가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는데 오글거리면서도 감동이었다. 막내들도 앞에 나가서 말을 했는데 그때 내가 좋아하는 오빠 비행기 옆자리는 내 자리라고 말해서 다음날 진짜 오빠 비행기 옆자리는 내 자리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단장님께 케이크를 전달하고 노래는 한목소리로 부르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하나였다.


해단식이 끝나고 조별모임을 가졌다. 나한테는 미안함이 많이 남는 시간이었다. 특히 진수 오빠한테 차갑게 굴고 까칠하게 굴었던 날들에 대한 미안함이 크다. 그리고 나는 3조인데 1조를 따라다녀서 너무 미안했다. 다시 이런 날이 오지도 않을 텐데 경솔하게 행동한 내가 부끄러웠다. 짧은 조모임을 가지고 다시 흩어졌다. 잠을 자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들이었기에 사람들은 거의 밤을 새다시피했다.


나도 계속 게임을 하다가 씻고 1시간반정도 자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일어나서 공항으로 갈 준비를 했다. 우리 예상한 시간보다 더 늦게 준비가 끝나서 공항에서는 바빴다. 그리고 예정된 날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헤어지는데 슬펐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섭섭함과 슬픔이었다.


그렇게 필로트여행은 끝이 났다. 나는 20년을 살았고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을 살아갈 테지만 이렇게 화살같은 한달은 다시 한번 없을 것 같다. 필로트는 큰 기대 없이 간 여행이었지만 지금은 큰 선물로 남아있다. 슬럼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매일 매일 고민없이 행복해하는 나를 발견했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걸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예전의 나는 왜 그렇지 못했나 하고 생각해 봤는데 결국 내 마음가짐의 차이였다. 내 생각이 바뀌니 늘 똑같던 것들도 다르게 다가오고 즐거웠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매일매일을 여행을 하는 것처럼 살고 싶단 생각을 했다. 반복되는 하루지만 내 마음가짐만큼은 새롭게 할 수 있도록 다짐해 본다. 여행이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외국이나 다른 고장에 가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번 필로트여행은 나를 목적으로 하는 출발였던 것 같다. 늘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니 새로운 내 모습도 발견하게 되고 내가 생각해본적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반성도 했고, 나의 강점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필로트여행은 더 특별하다. 그리고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첫인상이 나쁘더라도 더 다가가서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이슬이 언니의 삶의 지혜를 배워서 좋다.


마지막으로 단장님께서 성공적인 여행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기도하고 여행을 계속 하고싶기도 한 생각이 들 때라고 했다. 성공이라고 좋아했는데 그래서 더 아련하고 추억속에 사는 것 같다. 비록 ‘한여름밤의 꿈’이 될 수밖에 없지만 이 추억을 가지고 남은 2012년 힘낼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 있을 일들에 용기가 생긴다. 필로트여행이 가능하도록 해준 단장님, 새별이, 다혜, 새날언니, 필로트 모든 식구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필로트를 위해 일해주시는 모든 운영진들 정말 감사합니다. 복 받을 거에요.        


김혜정(대학생자동차유럽대장정단 필로트7 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