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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특별취재단] 기자로 참가한 제69회 베니스영화제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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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세계 3대영화제가 있다. , 베를린, 그리고 베니스영화제다. 사실 영화에 별 관심 없어도 섹션티비나 연예가중계 같은 연예정보프로그램을 돌려보다 보면 가끔 나오는 것들이라 모두에게 익숙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영화에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고, 그냥 친구들이랑 놀 때 영화관에 자주 가는 평범한 학생이다. 그런데 이번에 정말 운 좋게 69회 베니스영화제를 내 두 눈으로 직접 보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유럽, 그것도 베네치아, 게다가 베니스영화제라니 완전 환상이다. ‘내가 평생 언제 이런 걸 와 보겠어?’ 싶었다.


파리에서만 자동차로 12시간을 달려 도착한 베네치아는 듣던 대로 물의 도시였다. 길 대신 다 물이다. 물론 걸어 다니는 길도 있지만 마을을 가로질러 수로가 가득하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자기 집 문밖을 나서면 수로 쪽으로 계단이 나있고, 거기서 조그만 배를 타고 마을 곳곳을 다닌다. ‘우리집 자동차’ 대신 ‘우리집 배’도 꽤 분위기 있고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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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머무르는 캠핑장은 베네치아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목에 있고 베네치아 교통의 중심(?)인 로마광장까지 차로 10여분이 걸린다. 차는 로마광장까지만 갈 수 있는데, 베네치아 안에서는 배를 타거나 걸어야 한다.


베네치아근처에서 오는 모든 버스는 로마광장으로 모이고, 로마광장에서는 베네치아 안과 리도섬, 무라노섬, 부라노섬 등으로 가는 바또레토 (수상버스)들이 출발한다. 그냥 버스가 아니라 바또레토 타는 것도 처음엔 매우 신기했다.


나와 내 친구의 목적은 다른 곳이 아닌 베니스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 우리는 7일에 50유로씩 하는 교통카드를 사들고 리도섬으로 가는 바또레토를 찾았다. 이 교통카드는 구매한 뒤 처음 검표기계에 찍는 그 순간부터 일주일이 계산된다.


그리고 사실, 이탈리아는 그렇게 표검사를 심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되도록 늦게 찍으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직원 언니가 날 붙잡고 기계를 들이대는 바람에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찍을 일이 없어서 더 아까웠다.


1, 2, 5.1, 5.2, 6번 등등 리도섬으로 가는 바또레토는 참 많은데, 가장 정거장수가 적고 빠른 건 5.1번과 6번이다. 가장 빠르다고는 해도 40분 걸린다. 로마광장과 베니스영화제 장소를 바로 연결하는 MC노선도 있지만, 이건 귀가용으로 만들어놓은 건지 저녁부터 첫배가 있어서 오전에는 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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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리면 리도섬 ‘S.M.엘리자베타’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는데, 여기서 베니스영화제가 열리는 장소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제일 빠르다. 걸어서는 30분 이상 걸린다. 물론 걸어가는 길에는 리도섬의 번화가(?)가 있어서, 거기서 자전거도 빌릴 수 있고 피자나 파스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젤라또를 사먹을 수 있다.


젤라또는 요거트나 레몬 같은 상큼한 맛이 제일 맛있다. 중간에 파는 프로즌 모히또는 절대 비추다. 내 친구는 한입 먹고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쨌든 버스 얘기로 다시 돌아와서, 베니스영화제에 가기 위해 제일 확실한 건 CINEMA라는 글자가 있는 버스를 타는 거고 그게 없으면 V번도 탈 수 있다. 버스를 타고 10분을 달려 Palazzo del cinema에 도착하면 주위에 딱 보이는 게 프레스건물 ‘Palazzo del cazino’와 메인상영관인 ‘Sala Grande’건물이다.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때는 아직 개막전날이라 사람들이 메인상영관 외벽에 붙은 빨간 세모장식에 뭘 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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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사자그림이 있는 베니스영화제 로고가 붙어있고, 날개달린 황금사자동상도 있고, 레드카펫도 깔려있는 걸 보면서 내가 진짜 베니스영화제에 오긴 왔구나 싶었다. 영화제 스케줄북을 받아서 살펴보니 상영관은 4개 건물에 7곳이 있고, 여기서 시간마다 다른 영화가 나눠 상영된다. 상영관마다 시간마다 표가격도 다르다. 제일 비싼 건 메인상영관 Sala Grande에서 730분에 상영되는 영화인데, 무려 45유로다. 싼 것도 10유로가 넘어간다. 일반인으로서는 좀 부담스럽지만, 베니스영화제에서 영화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니까, .


영화제의 참가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일단 감독과 배우, 기자, 영화관계자, 배급사나 홍보사 등 영화산업 관계자, 일반인 등이다. 일반인들은 표를 사서 다니고 일부 건물에서는 출입이 제한된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디카드를 지급받게 되는데, 다 색깔이 다르고 색깔에 따라 대우도 다르다. 기자들은 또 그 안에서 일간지 기자(빨간 카드), 정기간행물 기자와 포토그래퍼(파란 카드), 인터넷 언론이나 기타(노란 카드와 초록 카드)로 나뉘는데 빨간 카드가 제일 위고 노란 카드와 초록 카드가 제일 아래다. 기자들이 입장할 때는 주로 빨간 카드부터 들여보내주고 노란 카드랑 초록 카드는 맨 나중에 들어갈 수 있다.


영화제 기간에 한 영화를 여러 번 상영하는데, ‘Publico’는 일반인들도 티켓을 사서 입장할 수 있고 이 경우 티켓을 산 사람이 우선이지만 ‘Press&Industry’, ‘Industry&buyers only’ 같은 글자가 적혀있으면 기자, 바이어 등 여기 해당되는 사람들만 볼 수 있다


포토콜에는 포토그래퍼 카드를 가진 사람만 들어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레드카펫 포토존에 들어가려면 또 다른 커다란 카드가 필요하다. 개막식과 폐막식은 이 사람들 중에서도 ‘Inviti’라고 해서, 초대장을 가진 사람만 정장을 입고 입장이 가능하다.


영화상영스케줄을 꼼꼼히 보니 일반인이 입장 가능한 Publico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베니스영화제 내내 영화제는 일반인보단 기자들이랑 영화관계자들 위주라고 느끼기도 했다. 하긴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캠핑장에서 리도섬까지 왕복 2시간40분이 걸리는 거리를 오가면서 매일 영화를 봤다. 주로 경쟁작을 위주로 봤는데, 거의 다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이탈리아영화는 자막이 영어로 나오고, 다른 나라 영화는 자막이 이탈리아어, 그리고 그 밑에 따로 마련된 긴 박스에 영어자막이 동시에 나온다.


프랑스영화라도 볼라치면 말은 프랑스어로 나오고 화면에 비춰지는 자막은 이탈리아어, 그 밑에 길다란 박스에는 영어자막이 나오는 거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나로서는 초반에 생각보다 알아듣기가 엄청 힘들었다. <Iznema> 같은 러시아영화는 대사가 별로 없어서 정말 좋았다.


인터뷰 다큐멘터리처럼 말이 많은 영화의 경우, 영어자막을 이해하려면 그쪽을 계속 쳐다봐야 하기 때문에 화면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나중에야 어느 정도 자막을 포기해가면서 보긴 했지만.


69회 베니스영화제의 경쟁작들에는 다양한 영화가 있었는데, 러시아의 <Izunema(배신)>, 미국의 <To the wonder><The master>, 프랑스의 <Après mai><Superstar>, 일본의 <Outrage beyond>, 한국의 <Pieta> 등등.


가장 좋았던 영화는 역시 우리나라 영화였다. 김기덕감독의 ‘피에타’! 자막 볼 필요 없이 듣는 순간 그대로 이해되다니, 감격스럽다 못해 눈에서 땀이 다 났다. 우리말은 사랑이다. 김기덕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이명박대통령이 바꿔놓기 이전의 청계천을 배경으로 등장시켰다. 대선직전에 이런 영화를 찍다니 재미있는 감독이다.


주인공 이름이 이강도다. ‘이’강도. 게다가 어머니와 아들, 피에타. 피에타는 희생된 예수와 그를 끌어안은 성모 마리아인데. 솔직히 딱 봐도 우리나라사람이라면 전태일이 떠오르지 않을까? 물론 설정은 좀 다르지만 어쨌든 난 그랬다. 국내에선 6일에 개봉한다는데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내가 제일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우리가 피에타 프레스컨퍼런스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거다. 프레스컨퍼런스는 프레스건물인 카지노에서 열리고, 카지노는 원래 기자증이 있어야 입장할 수 있다. 카지노 건물 3층에 프레스룸과 포토콜, 프레스컨퍼런스룸이 있다.


프레스룸에는 기자들이 쉴 수 있게 소파가 있고, 유무선랜과 책상, 노트북까지 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전세계에서 모인 기자들이 노트북으로 정신없이 뭘 쓰고 있었다. 다들 영어로 얘기하고 있는데 엄청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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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보다 더 큰 렌즈가 달린 카메라도 엄청 많고, 방송용 카메라와 앵커들도 보였다. 한국 기자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보였다. 지금 우리나라에 뜨는 베니스영화제기사들은 거의 다 외신 받아쓴다는 걸 여기서 알았다.


피에타 프레스컨퍼런스가 시작되자 김기덕감독, 배우 조민수와 이정진이 앞에 등장했고 외국기자들이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김기덕의 말 중 기억에 남는 내용은 ‘피에타’가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것이었다.


난 개인적으로 꽤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프레스컨퍼런스 끝나고 셋 모두에게 사인도 받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조민수씨가 엄청 반가워했다. 짧게 봤지만 정말 착한 배우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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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프레스컨퍼런스가 끝나고 레드카펫은 못 봤다. 공식상영은 보통 프레스상영이 끝난 다음날 메인상영관에서 4시 아니면 7시에 있는데, 공식상영직전에 Sala Grande 앞에서 레드카펫이 있다. 못 봐서 아쉬웠지만 나중에 사진을 보니 레드카펫 때도 그렇고, 공식상영 때도 영화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배우들 퇴장할 때까지 기립박수를 많이 쳤다고 하니 반응은 최고인 것 같다.


프레스상영때도 기립박수를 꽤 오래 쳤다. 어쩐지 반응이 좋더라니, 8일 폐막식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세계3대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대상이다.


돌아올 때는 MC노선이 있어서, 그걸 타고 왔다. 8~9시가 기자들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았다. 그래도 바또레토 탈 때는 앉아서 가는 것보다 밖에 서서 물을 바라보며 가는 게 훨씬 기분도 좋고 야경도 볼 수 있다.


베네치아의 야경은 꽤 멋있다. 달이 밝게 뜬 날엔 물에 비치기도 하고. 물론 물 쪽에 서있으면 가끔 물이 튀어서 세수를 하게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배 타는 걸 좋아하는 나는 바또레토 타고 다니는 게 좋았다. 이상하게 생긴 배도 많이 봤다. 차 대신 배를 타고 다니는 지역인 만큼 쓰레기 나르는 배나 짐 나르는 배, 택시 등등 진짜 다양한 용도의 배가 있어서 신기했다.


베네치아는 많이 보지 못했지만, 리도섬에서 베니스영화제를 정말 실컷 즐긴 것 같아 좋다. 특히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받아서 더 뜻깊었다. 처음으로 한국영화가 대상을 받은 해에 내가 베니스영화제 현장에 있었다니! 올해가 69회였는데 70회는 또 어떨지 궁금하다.


내년에도 또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번에 여기 온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다음번엔 젤라또는 물론이고, 베네치아에서 먹물 파스타를 꼭 먹어 봐야겠다.


박정민통신원(베니스영화제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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