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장에서 조지 클루니가 영국이 그리스에서 약탈해간 문화재를 반환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지지않았다면 단언컨대 이 글은 쓰여지지않았다. 제작·각본·감독·주연의 1인4역을 담당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엔드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아무도 박수를 치지않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도 없었다. 평소 조지 클루니의 관점과 재능을 높이 사는 한사람으로서 왜 이 영화를 만들어 기꺼이 자폭을 감수했는지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었던 만큼 기자회견멘트는 반가웠다. 

그렇게 해서 이 영화가 뭘 위해, 뭘 노리고 만들어졌는가는 명백해졌지만 이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이야기줄거리는 너무 빤드름하고 그 세부인 일화들인 따로 놀고 그 흐름은 자주 끊어져 어떤 성과가 있을까싶다. 기록영화적인 사실성도 약하고 예술영화적인 심오함도 없으며 상업영화적인 흥미마저 사라진 이런 영화는 누구든 떠올리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않는다. 당대를 대표하는 명배우들이 좋은 뜻으로 모여 단번에 망가질정도의 맥빠지고 지루한 영화를 만들고는 미국중심의 가치관을 노골적으로 결합해 미국에서의 흥행을 노리는 전략은 너무나 한심한 것이다. 

2차세계대전직후라면 모를까, 이제 미국은 더이상 다른나라를 비판하며 콩내라 팥내라 할 자격이 없다. 지난 70년가까이 미국이 저지른 전쟁은 얼마나 되고 그 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얼마나 되며, 물질적 재부와 문화적 재부는 또 얼마나 많이 파괴됐는가. 아무리 팝콘 먹고 콜라 마시며 가볍게 즐기는 헐리우드상업영화라고 해도 AP통신사도 보도한 미군의 노근리양민학살과 같은 사건들을 잊게 만드는 영화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말아야 한다. 진정으로 조지 클루니와 맷 데이먼, 케이트 블랑쉐, 빌 머레이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보지않는 것이 팬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음을 사전에 인지할 필요가 있다.  

브란덴부르크토어 근처에 히틀러가 자살했다는 벙커가 있다. 영화제기간 시간을 내 그 벙커를 들렀을 때 든 생각은 히틀러가 핵기술을 미국에 주는 대가로 자신과 부인의 목숨을 구해 여생을 다른 나라에서 편히 보냈다는 믿을만한 자료였다. 미국이란 나라가 그 핵을 가지고 일본을 상대로 제한핵전을 펼치고는 그 뒤 수많은 제3세계나라들을 얼마나 위협했는가를 생각하며 미국중심의 세계관을 퍼뜨리는 헐리우드블록버스터가 가지는 위험성에 새삼 경각성을 가지지않을 수 없다. 베를린날레가 이런 점을 모르진않았겠지만 조지 클루니 사단이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경쟁작이 아니라 비경쟁작으로 떨구면서 그나마 체면을 유지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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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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