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1부는 19일 지난 1991년에 있었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재심을 결정함에 따라 고등법원에서 이 사건에 대한 유·무죄를 가리게 됐다.
대법원은 이날 서울고등법원의 재심개시결정에 대한 검찰의 즉시항고를 기각하고 서울고법에서 재심소송절차를 진행하게 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강씨의 유죄근거가 된 필적감정결과에 대해 "재심대상 판결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속 문서감정인들의 증언중 일부가 허위임이 증명됐다"며 유서작성자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심리를 하기로 했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유서대필사건’은 1991년 5월8일 서강대 건물옥상에서 전민련사회부장 김기설씨가 노태우정권퇴진을 외치며 분신자살하자 검찰이 김씨의 동료이던 강기훈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이 유서를 대신 써줘 자살을 방조했다며 기소한 사건이다.
강씨는 1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3년형을 선고받았고 이듬해 4월 항소심 법원도 강씨에게 징역3년을 선고해 징역3년이 확정된 후 만기출소했다.
필적감정을 담당한 국과수소속 감정인 김모씨와 양모씨는 재판에서 자신들을 포함해 4명이 돌아가면서 현미경장비를 이용해 여러 차례 강씨의 필적자료와 유서를 세심히 비교 관찰했다고 증언했으나 과거사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과정에서 김씨, 양씨 외에 다른 두명의 감정인들은 "김씨가 대부분 감정을 진행했고 자신들은 공동심의란에 서명한 것이 전부"라고 진술, 결국 김씨와 양씨의 증언이 허위로 드러났다.
이에 재판부는 강씨의 재심 청구에 대해 "유죄를 인정할 만한 다른 증거 유무에 관계없이 허위 증언이 증명된 이상 형사소송법 420조 2호에 따라 소정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본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허나 재판부는 강씨의 유서대필자체에 대해서는 국과수 감정결과와 진실화해위원회가 의뢰한 감정결과가 엇갈리는 만큼 판단을 보류했다.
앞서 강씨는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 따라 2008년 1월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이 2009년 9월 재심개시결정을 내렸지만 검찰이 즉시항고함에 따라 지난 3년1개월간 대법원심리가 진행돼 왔다.
강씨의 변호인단은 재심 청구서에서 "법원이 자살방조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 강씨 혐의를 모두 인정했으나 이 가운데 자살방조혐의는 잘못된 증거와 증언에 기초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재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3년만에 대법원이 여러 의문점을 제시함에 따라 향후 서울고법에서 열릴 강기훈씨 재심은 새 필적감정과 증인신문을 통해 강씨 사건의 진위를 가릴 예정이다.
정재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