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정프헝수와민중주거환경국제연구소소장과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와의 간담회가 진행됐다.
서울주거복지센터는 저소득층의 주거문제지원과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는 시민단체다.
10개로 시작해 지금은 25개로 확대됐고 민간에서 위탁받은 16개 센터가 2014년 협회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노인가구의 임대료·소액보증금지원과 저소득층임대주택분양지원 등이 있다.
정프헝수와소장은 <우리 연구소는 주거환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민중들이 어떤 환경에서 사는지 생각 하려한다.>는 말로 간담회를 시작했다.
그는 <주거는 <산다>라는 동사형인데 어떤 공간에서 잠을자는것만이 아니라 노동하고 생활하는 모든것을 말한다>며 <빈곤층에 대한 주택문제라고 쉽게 말하지만 우리 연구소는 주택문제가 아니라 생활환경문제라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또 <연구소가 만들어진지 10년이 지났고 파리에 연구소가 있다. 6년전부터는 라틴아메리카국가들과 일하기 시작해 올해 라틴아메리카에 사무실을 개설했다.>면서 <아프리카에도 곧 새로운 사무실을 개설할 예정이다. 코리아의 주거문제를 접한 후로부터 코리아사람들과 일을 하고 싶어졌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계속해서 <우리는 <민중이 어떤 도시를 원하는가>와 관련된 세미나를 조직하고 교육한다>며 <가장 좋은 수단이 전시회다. 컨퍼런스를 하고 아예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며 연구소의 활동을 소개했다.
이어 베네수엘라 300만호주택건설 함께한 정프헝수와소장에게 <임대주택제도가 있지만 협소하고 임대보증비 등의 주거비를 내지 못하는데 이에 대한 해결방법을 듣고싶다>는 질문이 나왔다.
정프헝수와소장은 <연구소가 베네수엘라정부와 함께 베네수엘라주거프로젝트를 하고있다>며 <5~6년동안 함께 일하면서 많은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300만호주택건설은 8년전 차베스대통령의 지시하에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300만호가 아니라 200만 5000가구였고 8년안에 만들어야된다는 정치적 요구가 있었다.>며 <현재까지 89%를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또 2010년 베네수엘라의 가뭄과 2011년 홍수로 인한 기후문제를 언급하며 <짓고있던 주택들이 피해를 입고 기후문제에 대처하지 못하는것을 보고 더욱 견고한 건물을 지어야된다는 요구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베네수엘라정부가 돈이 많아서 시작한 정책이 아니다>면서 <차베스대통령은 항상 민중들에게 빚을졌다고 얘기했다. 민중들에 대한 미안함을 갚기위해서도 주거문제를 해결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300만호주택건설은 차베스대통령이 직접 관할했다>며 <정책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정부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되는 문제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대통령이 직접 틀어쥐고 지휘한것이 이 프로젝트의 힘이다.>고 강조했다.
정프헝수와소장은 모든 행정부서와 석유기업들이 300만호주택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면서 <이 정책은 단순히 주거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역사적으로 산업이 발전하지 않은 베네수엘라는 내수경제가 강하지 않고 석유를 판매하는 수출위주경제다.
따라서 300만호주택건설은 경제구조를 바로 세우고 환경적문제까지 해결하는 것으로 보건부부터 산업부까지 함께해야 가능하다.
300만호주택건설이 베네수엘라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획기적인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프헝수와소장은 <300만호주택건설인데 거주자는 1200만명이다. 이것으로 민중들의 삶이 변화했다.>며 <베네수엘라국민의 1/3이 이 주택에 살고 있다>고 알렸다.
또 <이것이 중요한것은 기업이 개입하지 않고 공공재로 접근한다는 점이다>라며 <부동산은 대부분 투기와 관련되는데 시장경제처럼 보면 안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다음으로 <차베스대통령 이후 베네수엘라가 불안정하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주택정책이 잘 추진되는가>는 질문에 <베네수엘라 민중은 아주 오랜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이들은 스페인제국주의와 맞서 싸웠던 민중이고 콜롬비아를 만들었던 시몬볼리바르의 유산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마두로정권은 민중들의 투쟁의 혜택을 받고있다>면서 <지금 제국에 맞서 싸우는 베네수엘라의 투쟁은 몇세기전 스페인제국주의와 맞서 싸웠던 역사와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외부에서는 불안정해 보일수 있지만 베네수엘라민중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객관적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압박이 엄청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민중들을 심각하게 위협하는것은 아니다.>며 <제가 만난 민중들은 제국주의침략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998년 차베스대통령의 집권은 민중들에게 해방의 순간이었다. 이후 사회가 빠르게 바뀌었지만 민중들은 투쟁을 놓지 않았다.>며 <민중들의 해방을 위해 많은 투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또 <1999년 새 헌법이 생겨나고 의원회를 구성하면서 제국주의에 맞설 기반을 만들었다. 그때 만들었던 법적 조치들이 외세에 맞서싸우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차베스서거후 마두로대통령이 들어선때부터 대부분의 서양국가들과 베네수엘라극우세력들은 마두로정권이 금방 붕괴할 것이라 떠들었다.>고 언급했다.
정프헝수와소장은 2013년부터 마두로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한 내외의 공격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마두로대통령의 임기이후 정권전복시도가 계속됐고 민중들은 마두로정권을 공격하는 세력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알고있다>고 전했다.
그는 <베네수엘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민중들과 모든것을 함께하고 있다. 여전히 교육도 무상이고 교육의 질도 좋다.>며 <20년간 콜롬비아인 400만명이 베네수엘라로 이민왔다. 위기가 있다해도 베네수엘라가 살기 좋으니 오는 것이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정부는 이민온 콜롬비아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무상주택·교육등의 모든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또 주민평의회에서 매달 모든 가정에 빵·곡물·달걀·고기 등 필요한 식량을 바구니로 지급하고 있다.
정프헝수와소장은 <국가가 민중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기대문에 마음을 얻고있는것>라며 <외부에서 얘기하는 베네수엘라의 식량위기는 사실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투쟁원천에 대해 베네수엘라민중을 대신해 얘기할 자격이 없지만 현재 베네수엘라와 많이 일하는 사람으로써 말하겠다면서 <투쟁문화가 투쟁의 원천>이라 분석했다.
그는 <해방된 더 나은 조건에 살고 싶다는 민중들의 염원이 작용한다고 본다>며 1998년을 차베스대통령의 집권과 민중들의 투쟁이 합쳐져 절정을 이룬 시기, 민중의 존엄성이 철저하게 실현된 시기라고 봤다.
이어 <꼬뮨이라는 작은 지자체의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차베스의 유훈이기도한 코뮌은 스페인어로 코뮤나스평의회라고 하는데 행정구역중 가장작은 단위로 민중들이 직접 결정할수 있다.
정프헝수와소장은 1998년 제헌이후 가장 혁명적인 것을 <꼬뮨이 등장한것>라며 <꼬뮨은 민중에게 주권을 준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베네수엘라민중이 꼬뮤나쓰를 중심으로 스스로 결정하는것이 동력이다. 실제로 주거정책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꼬뮨평의회와 계속 일하고 있다.>면서 <건축가들은 도시계획하면서 좋을지 안좋을지 탁상공론하는데 베네수엘라에는 그런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민중들이 결정해서 알려주면 우리는 기술자로 일한다> <우리가 가장 신경쓰는 것은 민중의 요구를 주거형태로 정확하게 만들었는가다>고 덧붙였다.
또 베네수엘라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건축가로 최고의 경험을 하고있다고 생각한다며 건축가로만이 아닌 민중들이 어떻게 살고싶은지 환경까지 얘기하기 때문에 영광이다고 말했다.
한 간담회참가자는 <남코리아는 70년전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성장을 제일로 하는 성장위주정책을 하다보니 빈부격차가 굉장히 심해졌다. 시민단체가 취약계층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나섰다.>고 남코리아의 역사를 소개했다.
이어 <시민단체가 주거복지운동을 하고 나중에 정부에서 공공주택등 주거정책이 전개됐다>면서 <베네수엘라와 프랑스에서는 정부의 정책과 민간의 활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고 물었다.
정푸헝수와소장은 <베네수엘라와 프랑스는 전혀 다르다>고 단언하며 <프랑스에서는 진보적 사회주택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전쟁후 나라를 재건한 정부에는 드골주의자·공산주의자도 있었다. 이들은 전쟁이 없기를 바라면서 국가재건사업을 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며 <어떻게 나라를 재건하는가 하는 질문에서 사회주택이라는 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폐허에서 건물을 짓는것은 주거문제해결이 아닌 국가재건사업이라며 <당시 공산당이 제1야당으로 40%의 지지율을 확보했기때문에 진보적인 정책이 가능했다>고 언급했다
또 <역사를 통해 정치적선택이 있어야만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는데 공산당이 집권한 지역에서 더 많은 건물이 지어졌다>면서 <사회주택을 만들때 재원을 누가담당하는가가 중요한데 프랑스에서는 일부가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나왔다>고 알렸다.
계속해서 <모든 노동자들은 임금의 1%를 냈기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민중들이 영향을 낼 수 있었다>며 <국가주도의 기관에서가 아니라 시민단체도 있었다. 사회주택의 형태를 보면 1층은 사무실이나 상업활동으로 쓰고 2층부터 주거공간으로 쓴다. 이것이 역사가 반영된 것이다.>고 전했다.
이어 <자본가들은 시장에서 배제되는 것을 참을수 없어서 계속 공격을 했고 주민들의 참여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며 <프랑스는 민중이 주거권을 박탈당하고 있는데 베네수엘라는 완전히 반대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양극화가 심하며 기업과 정부가 결탁된 나라에서는 어떻게 주거권을 되찾을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주택문제해결이라는데에 초점을 맞추면 수동적·방어적이 된다>면서 <주택문제는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민중들의 삶을 조직하는가 하는 문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주거문제는 사회문제를 공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민중의 지혜를 어떻게 공간적으로 표현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필요하다.>며<이런 기초없이 공간만 생각하다보면 언젠가 무엇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또 <베네수엘라와 일하기 시작하면서 <산다>라는것이 어떤것인지 생각하게 됐다>라며 <<산다>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고 노동을 하며 거주공간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다>고 규정했다.
계속해서 <도시라하면 도시와 농촌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농촌은 생산 도시는 소비의 이미지다.>면서 <모든 사람들의 머리에서 이러한 이미지가 사라지는 순간이 우리가 해방되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어 <어디에서 살든 노동을 하고 공간과 관계를 맺는것이 해방이다>며 <인구가 밀집되면서 일자리와 주거공간이 멀어지는데 이러한 전반적인 사색을 통해서 답을 찾아야된다>고 표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성과만이 아니라 오류와 한계를 나누면서 토론을 하고자 한다>면서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사회적문제를 전세계 민중들과 이야기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시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 생각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들었다. 주택의 문제뿐아니라 환경으로 접근해야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는 참가자의 소감을 끝으로 간담회가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