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일학생의거 83주년 및 제8회 부산항일학생의 날 기념식이 23일 오전11시 부산학생교육문화회관 및 부산항일학생의거 기념탑앞에서 열렸다.
노다이사건으로 불리는 부산항일학생의거는 1940년 일제가 침략전쟁으로 인한 전시체제강화조치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군사훈련과 탄압을 일삼으면서 촉발됐다.
당시 조선인학교였던 동래중학교(현 동래고)와 부산제2상업학교(현 개성고)는 지금의 구덕운동장에서 개최됐던 <경남학도전력중각국방대회>에 참여했다.
제1회대회의 우승을 조선인학교에서 차지했다는 이유로 1940년 11월23일 열린 제2회대회에서는 심판장이었던 <노다이대좌>의 편파판정으로 일본인학교가 우승했다.
분노한 학생들은 구덕운동장에서 독립운동가 등을 부르며 거리를 행진해 노다이대좌 집이 있던 영주동까지 몰려가 돌세례를 퍼부었다.
사건이 끝난후 모두 해산했지만 부산헌병대지시로 귀가하는 학생200여명이 검거됐고, 일본의 압력으로 학교는 자체적인 학생처벌을 내렸다.
노다이사건은 이를 계기로 부산의 대표적인 항일학생운동이 됐으며, 현재 동래고와 개성동문이 중심이 되어 부산항일학생의거 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민족정신계승을 위해 많은 행사를 개최하고 학술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2015년 11월 부산시교육청은 <부산항일학생의 날>을 조례로 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