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등록금에 고액레슨비까지 이중부담하는 예체능전공자들
기본 학과수업만으로도 충분한 교육이 돼야
‘예체능계열이 어느 만큼 썩어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요?‘
예체능계열 전공자 대다수의 인식은 그렇다. 예체능계열이 썩어있다는 사실도 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의 입에서 ‘관행’이라고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교육내에서 예체능계열에 대한 사형선고다. 적어도 예체능교육은 갈 길을 잃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예체능계열의 교육이 갖는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을 무용학과를 다니는 4년동안 직접 겪었다. 문제의식을 갖게 된 후 언론인터뷰, 소송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제기했지만 현재도 관행이라는 이름아래 여전히,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학내에서 벌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튀는 아이’로 보일 뿐이며 학과와 대학에서는 단 한번도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
예체능계열에서 흔히 ‘레슨’을 한다는 말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학생들에게 ‘레슨비’라는 명목으로 미명의 돈을 걷어 들인다. 올초 법원은 국립대 기성회비가 법적 근거가 없다며 부당이익금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고지서에 적혀 나오는 기성회비도 불법인데, 대학에서 징수하는 기성회비 이외에도 교수 혹은 강사와 학생 사이에서 오고가는 레슨비를 걷는 일은, 더욱이 대학본부를 통해 징수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으로 레슨비를 주고받는 방식이라면 더 문제이지 않은가?
이 문제의 핵심은 레슨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반강제의 형태라는 것, 학생개인에게 비용이 전가되는 것이다.
국어사전이 정의하는 ‘레슨’은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받는 1대1개인강습 같은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 무용학과의 레슨은 이런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강의시간에 실습한 내용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부전공자들이 섞여 있어) 같은 전공의 학생들이 단체로 ‘방과후학습’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연이 하나 생기게 되면 그 무대를 대비해 이 ‘레슨’이라는 것을 ‘공연연습’으로 대체한다. 공연이라고 하면 직접 겪지 못한 사람들은 여러가지 상상을 할 테지만 실제로는 공연연습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아예 교육에 대한 얘기는 빼도 좋을 정도이다. 비영리법인이라는 이름으로 교수들 각각 개인의 이름으로 무용단을 개설해놓고 정부로부터 보조금과 교부금을 횡령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에 동원된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학생들은 공연지원비가 적으니 무대의상비는 당연히 학생개인이 부담하라는 강요를 받는다. 또 공연장소로 이동하는 차비, 식비의 경비도 학생들이 각출해서 해결한다. 결국 학생들이 공연레슨을 통해서 얻는 것은 일정정도의 ‘경험축적’ 뿐이다.
이같이 부당한 일이 수십년동안 ‘레슨’으로 여겨지면서 관행처럼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교수들이 ‘학점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수 사이는 강력한 권력관계에 있다. 현재 대학에서 상위권의 학점을 유지하는 것은 대학생들에게 스펙축에도 끼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학생에게 ‘학점’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 졸업 후 진로나 취업, 혹은 장학금 같은 것들과 연결되는 이 ‘학점’이라는 것으로 교수들이 레슨과 공연에 참가할 것을 강요하고, 그 공연출연료마저 착취하고 있다.
예체능계열도 분명 교육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대학에 설립됐을텐데 현재 대학들은 그 안에서의 내용물인 진짜 진액, ‘학문’을 추구하는 일엔 전혀 관심이 없다. 학생들을 어떻게든 ‘굴려서’ 학과를 운영하고 교수 개인 혹은 학과 차원의 실적을 쌓아올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무용학과만의 실정이 아니며 대부분의 예체능계열에서는 관행으로 굳어져있다.
국가가 운영하고 책임지는 국립대학에서의 교육이 이러한데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사립대학들은 얼마나 더 심각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각종 레슨과 수업에서 이뤄지고 있는 수업을 빙자한 ‘학생재능갈취’, 원하지 않아도 강제로 비용을 내며 들어야 하는 레슨관행, 교수의 경력 혹은 업적 쌓기에 학생이 동원되는 것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예체능계열의 대학교육은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
학생의 재능이 빛을 내도록, 역량을 키우고 전문성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인데 이 기본을 망각하는 순간 대학이 아니라 학원이 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수준함양과 역량강화라는 기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제도적, 인적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은 강제레슨이 진행되지 않도록 하며 교수경력축적에 학생들이 동원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또 학사운영에서 학생들의 의견과 교육에 대한 평가가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교수가 학생들을 단순히 동원하거나 재량권을 남발하지 않도록 인격과 재량이 교육자로서 적절한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평가하는 임용제도가 있어야 한다. 기본 학과수업만으로도 충분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
결국 수업의 질이 높고 시간이 충분하면 개인에게 부담이 되는 레슨은 불필요하게 되어 자유선택사항이 된다. 정히 무용과에서는 '레슨'이라는 형식의 방과후수업이 불가피하다면 '실습학기제'형식으로 레슨을 수업편성해서 따로 운영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본 교과내에 정규편성하게 되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해진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예체능계열의 대학교육이 갖는 문제는 교수와 학생이라는 권력관계에서 일방적으로 학생들의 권리와 재능이 강탈당하는 것이며 이를 관행으로 치부하는 인식 때문이다. 예체능계열의 대학교육이 갈 길을 잃고 표류하지 않길, 억울한 상황을 직접 경험한, 그러나 여전히 무용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현실이 개선되길 바란다.
고액레슨비를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고된 아르바이트로 몸과 마음이 망가져 무용을 해나가기 어려운 일, 자연히 학업성적도 엉망으로 되버린 사례는 수없이 많다. 레슨비로 무용을 포기해야만 했던 이들의 경험이 후배들에게 되풀이 되지 않길 바란다.
김가영(공주대 무용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