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대학뉴스>는 21일부터 3일간의 국내평화기행을 다녀온 희망나비회원의 소감을 들어보았다.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로 모인 이들이 그릇된 역사를 바로 잡고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기위한 크나큰 희망임을 알 수 있었다. |
노란나비들로 가득 찬 1162차 수요집회
1월 21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수요집회를 가기 전 우리는 <바위처럼>이라는 곡을 공연으로 준비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위안부>할머니들께서 보고 계실 생각에 더 열심히 연습하고 리듬에 몸을 맡겼다. 몸치인 내가 떨지 않고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쉬운 동작으로 반복되어 즐겁게 연습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대사관을 향할 수 있었다.
도착했을 당시 생각보다 많은 인파에 놀랐고 길원옥, 김복동, 이용수 할머니들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이미 소녀상 옆에 자리를 잡고 계셨다. <위안부>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20년간의 수요일>이라는 책에서 사진으로 봐왔던 할머니를 직접 봬서 신기했고 건강은 괜찮으신지 궁금했다. 나는 할머니들께 먼저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따뜻한 악수와 함께 이용수할머니께서는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나의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 또 책의 저자이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대표님을 직접 보며 할머니들을 누구보다 아끼며 사랑하시는 모습에 가슴속 깊이 와 닿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수요집회에 앞장서 투쟁하시는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시민들이 있어 역사는 발전하고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고등학생들의 발언이 차례대로 진행되었고 어린 초등학생들부터 일본군 위안부·노예·고문 피해자 권익을 위한 단체인 네덜란드에서 온 브리짓 할더르 국제문제담당관까지 참석했다. 그녀는 <네덜란드 화요집회의 경우 재단 집행부가 대사관에 들어가면 대사가 30분간 면담이라도 해준다.>며 주한일본대사관의 태도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이어 우리는 시민 300여명과 함께 일본정부에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의 공식사죄를 촉구하며 법정배상을 힘찬 구호로 요구했다. 기다렸던 우리차례가 왔고 연습했던 대로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 우리는 <위안부>할머니들과 따뜻한 악수와 함께 사진촬영으로 수요집회는 마무리되었다. 전쟁으로 수 많은 문제들을 파생되어 눈 앞에서 보는 역사현장이 내마음 한편에 잊지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자! 1억인서명을 향하여
같은날 우리는 수요집회 이후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1억인서명>을 진행 하기위해 젊음이 가득한 홍대로 향했다. 작년에 진행한 서명운동이 150만명의 서명을 작성해 UN인권이사회에 전달했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은 한 시간이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구호도 외치며 바위처럼 춤을 신나게 췄다. 무심코 지나가는 분들도 있었지만 관심을 가져주시는 한분 두분이 점차 모이자 줄 서서 서명하는 광경을 보며 뿌듯했고 한분 한분이 우리에게 모두 소중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명에 함께 동참해주셔서 감사했고 나 혼자가 아닌 함께하니 더 즐겁고 힘내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명 바로 옆에서는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팔찌를 나비기금으로 사용하기위해 사람들에게 판매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였고 이 기금이 좋은 뜻에 쓰인다니 처음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나에겐 무언가 할 수 있다는 힘이 생겼다. 열심히 서명운동을 진행하면서 어떤 시민 분께서는 박카스 박스를 건네주며 격려의 말씀을 해주어 많은 힘을 받을 수 있었다. 서명이 끝나고 정리를 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인명피해와 힘없고 무고한 시민들이 역사의 아픔을 다시 쓰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 <위안부>할머니문제를 넘어 전 세계에 전쟁이 없는 세계평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짐에 따라 일본나라의 인구수만큼 되는 1억인서명도 금방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화와 아픔이 공존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가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여성인권을 위한 박물관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건축물로도 인정받아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곳이다. 주택가에 도달하자마자 벽에는 노란나비들이 걸려있어 박물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mp3에서 나오는 설명을 따라 박물관을 돌아보며 우리는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첫 스타트는 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일본군은 할머니들을 데려가기 위해 공장이나 일자리에 취직시켜준다며 돈을 벌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꽃다운 청춘을 앗아가 남성의 욕망을 채우는 <공용변소>의 역할을 하게 했다고 한다. 할머니들의 녹음된 영상, 할머니들께서 전쟁당시 끌려가는 상황들을 직접 손으로 그리신 그림들을 보며 나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녀들은 뼈아픈 한국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래서 나는 <교과서에 쓰여진 그릇되고 왜곡된 역사가 아닌 그녀들이 말하는 진실이 진짜 역사>라고 생각했다.
<위안부>할머니뿐만 아니라 콩고에 있는 여성들까지 박물관은 전세계의 평화를 위해 외치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은 지금도 전쟁이 진행 중이며 하루에도 몇십명이 죽어가고 있음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단순히 역사는 지나간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전쟁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망가진 그녀들의 선한 눈망울이 <앞으로는 이런 참담한 일이 없도록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며 우리의 노력이 중요할 것 같다.>며 우리의 가슴 속에 새겨주는 것 같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이 겪었던 아픔과 세계 곳곳 전쟁터에서 겪고 있는 아픔들이 중단되기를 바라며 평화로운 세상을 함께 외치자!
지난 슬픈 역사의 현장,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는 애국지사들이 죄인이라는 말도 안되는 누명을 입고 감금됐던 곳이다. 유일하게 일본풍 목조식 건물로 된 이 건물은 내부로 들어가면 애국지사들을 한눈에 감시하기 위해 사방의 통로를 한 지점에 모두 연결되어 관리하기 편하게 되어있다. 지금은 건물이 몇 개 없지만 예전에는 이 넓은 공원에 3000명 정도는 거뜬히 수용가능하다고 한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이 공간에서 온갖 고문과 협박을 받았을 생각을 하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형무소를 전시관, 중앙사, 12옥사, 공작사, 한센병원, 순국선열추모비, 사형장과 시구문, 유관순 지하 옥사, 담장과 망루의 순으로 관람을 하면서 지난 슬픈 역사를 되돌아 보았다. 벽돌들이 모두 바라고 녹슬어 을씨년스러웠고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밖에 공기보다 내부 감옥 방이 더 추웠다. 방한칸 크기는 너무 작았고 사람이 살 곳이 아니었다. 지하층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벽관, 독방, 임시구금실, 고문실 등이 있었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가는 벽관은 1분도 참기 힘들 만큼 답답하고 어둡고 무서웠다. 사형장 바로 옆에는 일제가 애국지사들을 처형한 후 시신을 형무소 밖에서 공동묘지까지 운반하기 위해 비밀통로를 뚫어놓은 굴도 있었다. 일제는 자신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해 입구를 막았으나 다행히 복원돼 볼 수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목숨을 바칠 만큼 나라를 사랑한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묻히고 은폐되었다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그들의 원혼이 떠올라 독립을 외치다 떠나가신 분들이 아직도 보이지 않는 전쟁에 21세기 대한 독립을 외치고 있는 함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모순덩어리다. 어렵지만 이것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진상규명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를 세우는 길일 것이라 생각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일제강점기를 그저 되새김질하는 곳이 아니라 100년도 되지 않은 지난날의 기록들을 보며 어제와 오늘이 연결되어 앞으로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다짐의 공간인 역사현장이다. 오늘날 2015년 광복70돌을 맞아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평화로운 나라가 되기를 기대하며 사람답게 살기 좋은 세상이 머지않아 오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 이 시대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가슴깊이 생각해보고 다짐하는 시간이 됐다.
▲국내기행사진들
희망나비 송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