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희망나비 국내평화기행을 다녀온 새내기의 소감문이 인상깊다. 대학에 첫 발을 들여놓음과 동시에 더 큰 세상을 제대로 본 것 같다고 전했다. <연대, 행동, 희망>을 말하고 있는 새내기의 풋풋하고도 진정성있는 소감을 들어보자. |
몇 년 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겨울방학을 맞았다. 이 맘 때면 많이들 여행을 간다고 하던데, 내가 선택한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평화기행이었다. 사실 기행을 신청하고 집에서 출발하면서는 이렇게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도 하지 않았고 예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기행을 통해서 나는 앞으로 펼쳐질 내 삶의 로드맵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20년간의 수요일>책도 읽고, 앞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다녀오면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하루 빨리 해결돼서 할머니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일본군<위안부>문제는 내 마음에 다가오지 못하고 뭔가 추상적인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통해 수요집회도 참석하고 세계1억인서명운동도 해 보는 등, 내가 직접 행동하면서 일본군<위안부>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도 무언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개인이 얼마나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항상 회의감을 느껴왔던 내가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내 목소리는 비록 작을지라도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훨씬 큰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수능을 위해 한국사를 공부했었는데, 교과서에 <43사건>이라며 설명되어있던 것과, 내가 직접 눈과 귀로 배운 <43항쟁>은 적잖이 달랐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여러 전문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했던 공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 했었다는 것을, 역사공부가 쉬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반발하고, 일본의 <Japan sea>표기에 분노했던 한국이면서, 자국의 역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기행을 다녀와서 아버지께 사진을 여러 장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강정마을과 강정천사진을 보시며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왜 해군기지를 지으려 하냐고 하셨다. 난 대답해 드릴 말이 없었다. 나도 그렇게 아름다운 마을에 별 이득도 되지 않는, 오히려 손해가 막심할 지도 모를 해군기지를 지으려고 주민들과 매일 대립하는 정부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무덤덤하신 목소리로 내게 <그래도 국가가 하는 일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고 말씀하셨다. 예전의 나는 당연하다는 듯 아버지처럼 생각해 왔기에 이번에도 아버지의 말씀이 이해가 안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기행을 통해 나는 그런 어쩔 수 없는 일에도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 싸워 나가는 분들 계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언젠가 그 희망이 빛을 발할 날이 올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도 그런 희망을 가지리라 다짐했다.
전남대 박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