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건 둘째치고 살아남기가 힘든 건 나라가 <구조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데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대학진학률 70%시대는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면구스러운 시대다. 정치경제적으로 부정부패가 난무하며 사회적으로 너도 나도 빈곤한 데다 문화적으로 내일 죽더라도 오늘 놀고 먹자는 허무주의가 팽배한다는 <일반론>을 누구나 알고 있다. 따라서 힘든 걸 어떻게 극복하는가하는 과업이 개인에 주어진다는 것에 문제의 초점이 돌아간다. 


힘들 때는 의식, 즉 <멘탈>이 튼튼해야 살아남는다. 의식에 반영되는 물질세계의 자극은 단지 지식정보로써가 아니라 정서로써 그의 식견경험, 객관상황과 융합돼 의식에 반영된다. 정서적으로 불안정된 사람을 <유리멘탈>이라고 부른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평정심을 갖고 대응하는 방법에 대한 자기계발서가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일체유심조>로 통하는 주관관념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결국엔 나만 잘 하면 된다는 논리에 청년들은 이제 염증을 느낀다. 


작년12월 아이돌가수 김종현이 사망했다. 하루에 40명씩 자살을 선택하는 남코리아에서 사람들은 유명가수의 죽음을 미스테리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유명한 만큼 충격을 받았고 그만큼 추모했다. 재능있는데다가 정의로운 청년이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을 어렵지 않게 이해했고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가슴에 불을 붙이려해도 잘 되지 않아 죽도록 괴로운 심정에 대해 공감했다. 꼭 우울증 진단을 받지 않았어도 그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이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형태의 직업을 갖고 있든 말든 죽음이나 다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슬퍼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고 김종현의 사회정치적인 역할을 상기했다. 그의 음악이 위로가 됐고, 그의 관심이 힘이 됐다는 말을 나눴다. 


세계 속에 가지는 자기 역할의 부재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흐르듯이 살래도 나라는 존재가 살다가 쓰레기만 남기고 가느냐, 아니면 세계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느냐 하는 문제에 누구나 직면하고 만다. 작게는 어머니, 아버지 또는 반려자와 자식들로 구성된 가족이라는 세계, 크게는 자연과 사회로 구성된 세계가 <심지어는 이 지경인데> 하다보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세계가,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로부터 불행한가, 행복한가 하는 고민은 사람의 자존, 곧 생명문제로 쉽게 연결되곤 한다. <하면 된다>는 정신이 별로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하니 비극이 발생한다. 


날 수 있다고 상상하면 난다는 식의 주관관념론적인 <하면 된다>는 정신은 뭐든 해보려는 청년들을 맹목적인 도전에 나서게 했다. 어느 누구도 이들의 열정에 답해주지 않았다. 나만 잘 하면 된다는 논리 아래에서 청년들은 산개하여 각자의 전투에서 패배했다. 자기 역할 찾기에 성공하는 경우가 희박하다. 오히려 금수저흙수저로 표현되는 계급의 골이 심화되고 허무주의패배주의가 뿌리깊게 자리했다. 그 사이 세계는 <이 지경>이 됐고, <이 지경>인 세계는 주관관념론적인 <하면 된다>를 강요하며 세대를 거듭해 비극의 주인공들을 양산했다. 


하지만 실제로, 하면 된다.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그냥 하면 되는 일이다. 담배끊기에서부터 정권교체까지 주체적으로, 객관적으로 하면 된다. 목적의식적이고 주도면밀한 정신력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 그러니까 힘든 걸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면 된다>가 맞는데, 주체적이고 객관적인 <하면 된다>는 정신이어야 한다. 건강한 정신은 <이 지경>인 세계에서 보다는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에서 쉽게 발양된다. 


다시 문제는 사회의 근본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데로 돌아간다. 하면 된다, 개인의 열정에 화답하는 사회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함께하자는 공동체가 있다면. 그때에는 나아가 성공의 최고형태가 부자이거나 승리가 곧 돈으로 귀결되지도 않는다. 뭐든 해보려는 청년들이 길을 잃지 않고 가족에, 국가에 이바지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21세기대학뉴스

최나라니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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