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진보학생연대가 <인문학의 봄, 인문학으로 봄> 캠프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전국영화영상동아리 화담의 이성진대표와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진보적 관점을 갖고 세계를 대하는 문제를 논했다.
영화는 종합예술
영화는 음악, 영상, 연기까지 하나의 종합예술입니다. 종합예술인 만큼 느끼는점이 많은 예술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쉽고 간편하게 볼수 있지만 영화를 보고 느낀점을 이야기할 공간이 부족하고, 나누고 싶어도 그러지 못합니다. 평론과 관련된 책들은 어려워서 쉽게 보기 힘듭니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나누려고 마련한 자리인데, 저는 영화를 어떤 관점으로 영화를 봐야하는지 말하려고 합니다
판타지영화 <반지의 제왕>이 어떤 역사적 바탕을 두고 있는지 아시나요? <반지의 제왕>의 작가 J.R.R.톨킨이 작품을 쓸 당시 2차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절대반지를 두고 오크족과 연합군이 싸우는 <반지의 제왕>의 내용이 2차세계대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오크족을 독일군으로, 연합군을 그외 세력으로 볼수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을 독수리가 구해주는데, 독수리는 미공군의 상징입니다.
다시말해 미국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요정족은 아름답게 그리고, 독일나치군을 상징하는 오크족은 역겹게 그린 표현방식에 작가와 감독의 생각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반지의 제왕>은 단순한 판타지영화로도 재미있는 영화지만 음악, 영상, 연기를 종합적으로 분석했을 때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되는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점에 중립은 없다
영화를 이해하려면 영화사조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영화들은 대부분 포스트모더니즘에 해당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전은 모더니즘, 그 이전은 인상주의입니다. 맑스의 구성체론에 따르면 경제가 사회를 규정한다고 하는데, 자본주의경제의 취약성이 그대로 예술에 반영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본질적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서 상대주의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현대사회를 보면 다를바가 없습니다. 옳게 들리는 말을 하면 좋다고 하는데, 그런 논리라면 예를 들어 <일베>라도 옳게 들리는 말을 하면 상관없는 것이 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가치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 있지만, 취향으로서의 표현의 자유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포함하는 인권 차원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상대적인 것으로 볼수 없듯이 가치에는 절대성이 있습니다.
2014년 <일베>에서 단식하는 세월호피해자부모님들 앞에서 이른바 투쟁이라며 폭식을 했습니다. 단식을 두고 동물인 인간이 하는 행위에 따로 본성은 없다고, 가치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 가치들을 외면해선 안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들을 보면 <이게 무슨 영화인가>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결말이 뭐 이래>라는 것도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본질을 외면하고 절대성을 가지는 가치를 외면하기 때문에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흑인인권운동가 하워드진목사의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는 책이 있습니다. <달리는 역사 위에 어떻게 중립이 있겠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설국열차>의 무한히 달리는 열차에도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만 있을 뿐 중립은 없습니다. 외면하지 말아야 할 가치를 두고 외면하는가, 외면하지 않는가만 있을 뿐 그 가운데는 없습니다.
대안까지 이야기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
영화 <아바타>도 <반지의 제왕>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배경이 있는 영화입니다. 15세기 백인들이 아메리카대륙 원주민을 침략한 사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교과서에서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고 황무지를 개척했다고 하는데, 영화 <아바타>에서는 침략당한 원주민들의 고통을 그렸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는 영화만이 아니라 문학과 음악에서도 표현됩니다.
좋은 영화란 현실을 잘 담은 영화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영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화계의 주류는 비판적사실주의입니다. <말죽거리 잔혹사>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같은 영화들이 주류입니다. 실제로 공신력있는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작품들도 비판적사실주의 영화입니다. 국가폭력을 폭로하거나,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영화들입니다. 작년에 개봉한 봉준호감독의 <옥자>도 그런 영화입니다.
또 폭로・고발에서 나아가서 대안까지 이야기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입니다. 현실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는데서 그치면 아주 좋은 영화라고 보긴 힘듭니다. 홍상수감족은 개인적인 이야기만하는 감독입니다. 개인주의, 패배주의만을 이야기하다보니 홍상수감독의 영화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영화 <괴물>이 바로 비판적사실주의 영화입니다. 혈연관계인 가족공동체를 계급관계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빈민층에 해당하는 캐릭터가 괴물에게 기름을 먹이고나서 대학생에 해당하는 캐릭터가 화염병을 괴물에게 던집니다. 그런데 화염병을 제대로 던지지 못합니다. 죽어버린 학생운동에 대한 봉준호감독의 조소가 담긴 장면입니다. 그런데 청년에 해당하는 캐릭터가 불붙은 화염병 심지를 꽂은 화살을 쏘아 괴물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고, N포세대에 해당하는 캐릭터가 창으로 괴물을 찌르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괴물>은 결국엔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담고있습니다.
감독들은 하고싶은 말을 영화에 담습니다. 우리에겐 영화를 보고 감상평이나 소감문을 쓰는 것 또한 하나의 창작입니다. 창작을 어떻게 할 것 인가하면 하고싶은 말을 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하고싶은 말을 곧대로 하기란 한걸음 더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저는 가장 힘있고 창조적이고 똑똑한 대학생들이 이런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는 관점, 진보적인 관점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질문을 던지는데서 그치는게 아니라 답을 찾아야
이명박이 구속됐습니다. 이명박 구속 다음은 뭘 해야하겠습니까? 영화 <괴물>에 따른다면 청산의 방법을 써야합니다. <괴물>에서 괴물을 만들어낸 곳은 미군기지입니다. <괴물>에서 내놓은 해결방식은 괴물의 죽음, 곧 청산입니다.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자신이 서있는 위치가 달라지다보면 같은 영화도 새롭게, 같은 사건도 새롭게 보게 됩니다.
덧붙여 진보적사실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진보적사실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는 몇 안됩니다. 진보적사실주의는 사회체제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사조입니다. 지금의 사회체제에 대한 비판이 불가피하다보니, 영화를 찍으려면 돈이 필요한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적사실주의 작품을 찾기가 힘듭니다.
영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입니다. 영화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저는 영화의 내용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갖고 영화를 봅니다.
영화 <트루먼쇼>가 왜 명작이겠습니까? 현실을 보여준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제한된 정보만을 갖고 살다가 결국 거기서 탈출하는 내용에는 무언가를 조종하는 프로그램의 존재가, 언론이 하는 말이 진실힌가 사실인가 하는 질문이 담겨있습니다. 트루먼이 혼자 걸어나가며 영화가 끝나지만 그렇게 걸어나가서는 바뀌는 것이 없습니다. 이후 뭘 할수 있겠습니까. <트루먼쇼>가 명작이지만 예를 들어 모두가 함께 걸어나가야 바꿀 수 있다는 식으로 질문에 대한 답까지 내놓는 영화였다면, 진보적사실주의 영화였다면 어땠겠습니까.
질문을 던지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답을 찾는 것이 진보적 관점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하려는 말이 무엇일까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는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인문학을 사람에 대한 학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과학은 세상에 대한 관점과 입장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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