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책들이 있다. 그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작별하지 않는다>다. 마침 학교에서 <작별하지 않는다>의 저자 한강작가를 초청해 북콘서트를 진행한다길래 바로 찾아갔다. 사실 나에게 이 책은 베일에 감싸져 있는 책이었다. 차가운 눈을 매만지고 인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가가 과연 어떤 말을 해줄지 궁금했다. 강의실은 빈자리 하나 없이 수많은 학생들로 가득찼다. 북콘서트는 작가가 출판한 책중에서도 과거의 아픔을 다루고 있는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두권을 출판하게된 계기와 책을 집필하면서의 과정을 다뤘다. 제주인구 1/9이 학살당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북콘서트가 시작됐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항쟁을 소재로 한다. 인선의 이야기는 4.3의 민낯을 직면하게끔 쓰여졌다. 지금으로부터 80여년전, 계엄령이 내려졌고 그날로부터 그 누구든 폭동으로 간주하고 죽이겠다는 포고령이 내려졌다. 47년부터 54년까지 제주도에서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숨이 붙어있다는 이유로 제주인구의 1/9이 죽었다. 꿈인지 현실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참혹했던 그날에 세월이 흘러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했다. 바로 인선의 어머니였다. 인선의 어머니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제주에 묻어져 있는 아픔을 파헤치고 작별하지 않으려 붙잡으려 했다. 인선 역시 어떤것도 포기하지 않고 아픔을 기억하려 했다. 죽음속에서 삶을 찾으려고 한 인선의 이야기는 책 곳곳에 사무쳐있다.
<과거가 나를 붙잡는지 내가 과거를 불러오고있는지 모르겠다>, 한강작가가 집필하는 과정에서 들었던 의문이라고 한다. 작가는 잔혹했던 제주의 그날을 직시하는게 버거웠다고 한다. 누군가의 몸이 잘리고 태워지는 사진을 보며 집필하는 동안 악몽을 꾸기도 하고 피하고 싶었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써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과거와 지금 존재 사이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피로 물든 80년전 그날을 작가는 외면하지 않고 여전히 기억하고 애도하고 있었다. 거대한 학살의 현장이였던 제주, 그날의 폭력과 투쟁을 하나하나 찾아 기록한 내용을 모아 독자들에게 전했다. 책의 중간에 나온 구절 <계속해봐야지, 일단은>이 더욱 와닿는 시간이었다.
<담담하고 잔혹하다> 이 책을 표현하라면 이렇게 적어내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새 가슴이 쓰라리고 손끝이 따가워진다. 하지만 책을 통해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위로할수 있었다. 지금 존재하는 우리의 몫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희생자였고 생존자이자 유가족이다. 가까이에서 본 한강작가의 담담해보이는 눈빛에는 인류에 대한, 민족에 대한, 사람집단에 대한 격렬한 사랑이 분명히 담겨있었다. 여전히 정치적 이유로 땅속에서 편히 눈감지 못하고 있는 이름모를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4.3의 올바른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끝까지 <작별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