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이후 7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세대는 여러번 바뀌었다. 이제 남의 젊은 세대는 북과 연결점이 없다. 북에 직접 가본 적도 없고, 북에 두고 온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북 사람을 만나 본 적도 없다. 그런 젊은 세대들에게 북은 감정적으로 전혀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통일의 주체인 민간인을 중심으로 북과 교류하려는 행동은 점점 사라지고,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무관심해지고 있다. 어쩌면 지리적인 분단보다 이런 형태의 단절이 진짜 <민족 분단>일지도 모른다.
사실 다수의 젊은 세대들에게 북은 실감조차 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한 적이 없어 아주 단면적으로 이해하게 된 북은 <말이 안 통하는 상대>, <타협의 여지가 없는 단체> 정도로 규정된다. 그러나 이재봉교수의 말처럼, <우리가 북한을 상대로 평화를 염원하든 전쟁을 준비하든> 북에 대해 입체적이고 왜곡되지 않은 정보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평화통일>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중요한 일이다. 모르는 것이 문제라면 배워서 알게 되면 그만이지만, 남에서는 또 다른 장벽이 있다. 북에 대한 사실을 말하거나, 북이 가진 긍정적인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혹은 그저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국가보안법>이 그것이다.
이재봉 원광대 정치외교학과교수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10여차례 국가보안법 관련 재판에서 전문가증언을 해왔다. 주로 통일운동을 하다 국보법위반으로 걸려든 사람들의 재판이었다. 이재봉교수는 통일과 북에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증언을 그치지 않아 왔다. 그 이유는 국가보안법을 악용하여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검찰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런 그의 증언이 극우언론에서 왜곡되어 보도되는 것을 보고, 이교수는 그의 법정증언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칼럼을 연재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재봉의 법정증언>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저자는 법정에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 없이 사실 그대로를 말한다.>는 선서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한 사안까지 거침없이 나아간다. 또 역사에서 이름이 지워진 공산주의자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며, 공산주의가 민족해방운동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분단과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를 처음 접한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운동은 일제치하에서부터 시작됐고, 평양보다 서울에서 훨씬 활발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한반도역사에 준 영향이 적지 않지만, 반공주의에 갇힌 역사교육으로는 배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어느 이념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평가와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 사안을 다루는 태도는 남의 <우방국>이라 불리는 미국을 대할 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친미반공의 사회구조안에서 말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미국이 한반도분단을 주도했다는 아주 기본적이고 엄연한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남사회 내에서 <종북>으로 받아들여져 국가보안법의 처벌받을 수 있는 반미운동에 대한 기원과 성질을 짚어본다.
반미운동은 1945년 미군이 한반도에 착륙하자마자 자생적으로 시작됐다. 일본 식민통치구조의 연장에 불과한 미군정으로 인해 반미감정이 생겨났던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반미감정은 1980년 광주학살과 전두환 독재정권의 배후에 있었던 미국의 행보로 인해 폭발하고, 사회 각 분야로 확산됐다. 민중운동이 반미운동으로 발전하며 외세의 간섭 없이 민족통일을 실현하자는 반외세 민족자주운동이 전개됐고, 미국은 통일의 걸림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북핵문제>에 관해서 이교수는 남의 핵무기배치가 북의 핵무기개발을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이라 지적한다. 북은 핵을 가진 주변국들과 주남미군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재래식 무기와 인력을 축소하여 돈을 아끼기 위해, 미국과 협상을 벌이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핵개발에 매진해왔다. 저자는 <북핵문제>를 <역지사지>와 <발상의 전환>으로 풀어나가지 않는 이상 한반도통일을 불러오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두단계에 걸친 핵문제해결방안을 제안한다.
<이재봉의 법정증언>이라는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북과 통일에 관해 시대에 맞는 입체적인 분석과 방안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분단 이후 70여년간 민족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쳐오면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통일과 그 통일의 주체 중 하나인 북에 대한 담론은 아직도 수십년전에서 그대로 멈춰 서있다. 저자는 통일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원인으로 남북간의 적대감, 한반도분단체제에서 이득을 얻는 강대국들, 분단을 정권유지 및 강화에 악용해온 정부, 그리고 각자의 체제만을 고집하는 양국의 위정자들을 꼽는다.
분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는 어마어마하다. 우선 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활동을 <종북>이라는 말로 매도해, 정치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또 군사외교적으로 자주권을 찾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매년 엄청난 국방비를 소모하고 있다. 흔히 막대한 통일비용을 이유로 통일에 반대하지만, 분단비용은 통일비용보다 더 비싸고, 훨씬 소모적이다. 그리고 분단 때문에 한반도는 늘 긴장과 갈등의 중심에 놓여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사이에 낀 남북이 통일을 해야만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을 수 있다. 그 외에 징병제, 이산가족, 끊임없는 전쟁에 대한 공포 등 분단의 폐해는 너무나 깊고, 통일로 얻을 이득은 굉장히 크다.
저자는 <연방제통일>을 바람직하면서 실현가능성이 높은 통일방안으로 주목한다. 북이 먼저 제시했다는 이유로 연방제통일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크지만, 이보다 더 나은 방안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연방제통일은 남북이 서로의 사상과 체제를 인정하고, 각자의 자주성을 지키면서 긴밀하게 협력하는 방식의 통일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21세기형 통일>을 주장한다. 그것은 남북이 적대관계를 풀고 서로 협력하며 자유롭게 연락하고 오갈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게 된다면 체제통일은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실질적인 통일>이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통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남의 체제로 통일이 돼야 한다고 배워왔다. 통일담론은 거기서 한발짝도 허용되지 않은 채 멈춰버렸다. 자유로운 토론도, 다양한 의견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재봉의 법정증언>에서 이재봉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통일은 남과 북의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이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며, 남과 북의 체제가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니면 평화통일은 이룰 수 없다. 이런 실질적이고 바람직한 통일담론은 이제까지 추상적인 단어였던 <통일>을 현실로 끌고 와, 구체적인 방향이자 도달할 수 있는 미래로 만든다.
남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북에 대해 배우는 것이 어렵다. 왜곡되고 지워진 역사의 반쪽만 있을 뿐이다. 기울어진 역사관에 추를 달아 균형을 바로잡는 일은 이제까지 부실한 현대사교육을 받아온 한국인에게 절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재봉의 법정증언>은 이제까지 편견과 왜곡의 대상이었던 북을 바로 보기를 권하고 있다.
강한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