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근무하며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신부 상현(송강호)은 죽어가는 환자들앞에서 무기력함에 시달린다.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해외의 수도원에서 비밀리에 진행하는 백신개발실험에 참여한 그는 죽음 직전에 이르렀다가 <이브>라는 피를 수혈받아 소생한다. 이로써 최초의 인간, <아담>의 자격을 가진 상현은 극이 전개되는 동안 끊임없이 사람의 사회적 본성과 생물학적 본능 사이에서 갈등한다. 사람의 본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사람이 아닌 뱀파이어로 부활한 상현은 한국으로 돌아와 기적을 행하는 신부로 유명해졌다. 타신자들처럼 매달리는 라 여사(김해숙)를 통해 상현과 태주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 같지만 실은 <아담>인 상현과 <이브>인 태주(김해숙)와의 만남은 극전개상 필연적인 만남이었다.
뱀파이어인 상현은 건물벽에 매달려 태주의 밤말을 듣거나, 라 여사와 강우의 폭력에 시달리다 못참고 몽유병처럼 새벽에 맨발로 뛰쳐나오는 태주에게 자신의 구두를 신겨준다. 태주가 <사실 신부님을 기다렸다.>면서 <인연>을 만난 듯 상현에게 이끌리듯 유혹하자, 평소에도 사람의 피를 빨기 위해 살인을 할 것인가 하는 사회적 본성과 생물학적 본능 간의 갈등에 시달리던 상현은 태주로 인해 더욱 극심한 갈등에 시달린다. 그러나 라 여사의 호출로 1층 한복가게에서의 일탈은 끝을 보지 못한다. 2층으로 돌아와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마작모임 <오아시스>에 참석한 두 사람은 묘한 눈빛과 말을 주고 받으며 성적인 교감을 멈추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은 병원에서 다시 만난다. 성관계를 가지고 난 뒤 상현은 지도신부에게 <태주의 몸은 물과 같다>고 고백했다. <아담과 이브>에 비추어 봤을 때 영화에서 물은 <선악과>와 같다. 처음에는 <끌림과 호기심>으로, 이후에는 <죄책감과 공포>로 작용했다.
태주가 상현을 거짓말로 부추겨 강우를 수중살해시켰을 때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게 강우의 시체 위에 올렸던 바위가 곧 죄책감이었다. 축축하게 젖은 죄책감의 무게에 짓눌려서 이전에 긍정적인 작용을 했던 물이 공포가 되고, 트라우마가 됐다. 트라우마의 발현으로써, 선악과를 따고 아담을 꼬드긴 이브처럼 태주는 상현보다 더 광적으로 피에 집착한다. 태주의 새파란 드레스가 곧 그녀의 광기였다. 뱀파이어가 된 태주는 살인을 멈추지 않는다. 생물학적인 본능을 제어할 의지가 없다. 분노한 신이 두 사람을 에덴에서 쫓아낼 때 입힌 <짐승의 가죽>을 연상케 한다.
반면에 뱀파이어가 되기 전에 병원에서 근무하며 사람 살리는 일에 관심이 많던 상현이 뱀파이어가 되어 초인적인 오감으로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듣고 느끼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상현은 사람의 피를 빨아야지만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애초 갖고 있던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신앙심 또는 사회적 본성, 즉 양심과 싸워야만 한다. 초인적인 힘을 가지게 된 것이나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나 자기가 선택한 운명이다. 상현으로 표현된 아담은 사람이자 인류의 원형을 의미한다. 인류는 아담과 같이 자기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상현은 양심을 어렵게 택하며 태주와 함께 자살을 하기로 했다. 상현이 태주의 맨발에 신겨주는 구두는 사회적 본성이 생물학적 본능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쨌든 상현과 태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한몸이다. 상현과 태주는 사람의 피를 빨아 자신의 생명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계급적으로 상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계급은 둘째치고라도, 누구나 양심적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서바이벌>이나 다름없는 사회생활에서 사회적인, 인간적인 도덕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가하는 고민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상현과 태주는 특히 힘을 가진 존재로서 마치 뱀파이어처럼 비정상적인 부와 권력을 누리는 기득권 세력을 의미하는 듯 하다. 그들이 사는 집은 이전에 라 여사의 집이었는데, 이 2층짜리 일본식 적산가옥은 1층에 전통한복 가게가 있고 2층에서는 일제 때 유행하던 이난영의 뽕짝, 중국식 화투인 마작모임, 러시아산 보드카가 혼재한다. 강우가 온갖 병을 달고 저능아로 태어난 게 어쩐지 이상하지 않은 만큼 공간이 의미하는 바가 의미심장하다. 종내에는 정체성을 잃고 뱀파이어가 주인인 기형적인 집이 됐다. 집을 빼앗긴 라 여사는 전신마비되어 눈만 껌뻑이며 주인행세를 지켜만 볼 뿐이다. 모자란 아들을 잃고 불구가 되어 권력을 가진 세력에게 터전을 빼앗긴 라 여사의 처지가 참 기구하다. 그런데 상현과 태주를 단순한 기득권으로만 단정하기는 어렵다. 상현은 이전에 신부였고, 태주는 라 여사의 딸이자 며느리인 고아였다. 사람이었을 때 가진 속성과 뱀파이어로서 뗄 수 없는 생물학적 본능 사이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는 상현과 태주는 그래서 박쥐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라 여사네 2층집과 다를 것이 별로 없다. 또 우리네 삶을 돌아보면 끊임없이 갈등하는 박쥐, 상현이나 태주의 삶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다. 그래서 피를 빨며 자신의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려는 본능을 누르고 인간다움, 본성을 택한 상현과 태주의 선택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1세기대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