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수필을 좋아하지 않는다.

독서의 목적이 재미, 감동, 깨달음, 정보습득 중 한가지이상을 충족하기 위한 거라고 볼 때 수필로 이 네가지 중 한가지라도 충족하기란 쉽지 않다.

수필은 그 특성상 신변잡기적이다. 그래서인지 타인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오롯이 홀로 있고 싶을 때 타인의 이야기를 듣듯 수필을 읽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수필은 문장의 맛이 좋아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수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제까지 읽었던 수필들중 문장이 좋았던 수필은 김연수작가의 젊은 시절 수필들뿐이었다. 단언컨대 김연수작가의 문장력은 소설보다 수필에서 더욱 빛난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좀처럼 수필을 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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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책인시공』은 내가 책을 좋아하고 책을 소재로 쓴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어중간하게 비어 잠시 들렀던 서울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그날따라 서울도서관의 의자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도서관구석 바닥에 앉아 책장에 등을 기대고 잠시 앉아 있는데 내 바로 앞에 이 책이 꽂혀 있었다.

그래서 첫장을 폈는데 들어가기에 앞서 ‘독자권리장전’이 있어서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다.

작가가 서술한 독자권리장전은 공감되고 재미있었으며 합리적이었다.

17항목으로 구성된 독자권리장전은 독서에 대한 최대한의 자유과 권리에 대한 글귀였고 그중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책에 대한 검열에 저항할 권리’는 단순히 재미로 느껴지지 않는 공감을 이끌어 냈다.


그렇게 한참을 읽다가 약속시간이 다 되어 이 책과 헤어진 후 얼마 전 재회를 했고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먼저 든 생각은, 이 책은 문장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수필이라는 점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이 책을 추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책이 아직 우리 곁에 있음에도 나는 깊은 향수와 비애에 젖어 이 책을 읽었다. 책이 없는 시간과 공간, 인생을 상상할 수 없는 이들이라면 그 심사가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김영하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였다.

책과 독서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기록된 문장들은 생생하게 살아있어서 나 또한 김영하 작가와 같은 향수와 비애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문장들.

‘책의 본문 편집은 단순히 글자를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고요함, 채움과 비움을 조합하여 책을 읽는 사람의 느낌과 생각이 물결처럼 순조롭게 흐르게 하는 고귀한 예술이다’

책을 편집, 제작하는 노동자를 노동자이자 예술가로 만드는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기쁜,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책을 정신적 메시지가 담긴 고귀한 매체라고 생각한다면 상품구매를 권장하는 매혹적인 광고들이 몰염치하게 버티고 있는 잡지들은 결코 책이 될 수 없다.’

그렇다. 광고들이 잡지에 그냥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몰염치’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소소하지만 공감과 즐거움을 주는 표현이 가득한 문장들과 책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독서에 대한 기쁨을 드러낸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독서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인간의 삶을 왜소하게 만드는 현실을 극복하고 변화시키는 힘이 원대한 이상에 대한 상상력이라면 그 상상력을 키우고 타인과 함께하는 힘을 키우는데 독서만큼 좋은 수단도 없다.

독서의 즐거움을 알고 싶다면 혹은 독서의 이유를 몰라 책을 멀리 하고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독서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행위인지, 독서인의 모습이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 될 만큼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인지 알려주는 즐거운 책이다.


양고은(시사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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