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계엄이후 123일만에 윤석열이 파면됐다. 우리는 <빛의혁명>으로 시대를 뒤흔들었고, 그 과정을 통해 역사의 주인이 우리임을 다시한번 증명했다. 4.19민중항쟁 65주년을 맞는 오늘, 다시 질문은 던져졌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일까.
1945년 8.15광복을 맞은 우리는 친일청산을 이룩하지 못한 채,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에 자유를 다시 빼앗겼다. 반공이념은 지배의 도구로 됐고,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파괴를 제도화하는 무기가 됐다. 부정부패와 권력욕에 찌든 이승만은 학살도 서슴치 않았다. 1948년 4월의 제주는 피로 물들었고, 1950년 전쟁은 전국을 폐허로 만들었다.
1960년, 마산앞바다에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다. 당시 17살이었다. 김주열의 희생은 4.19민중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이승만파쇼권력을 끝내기 위해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불의한 흐름에 제동을 걸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냈다.
그로부터 65년이 흘렀고 우리는 또 한번 민주주의의 갈림길에 섰다. 2024년 12월3일 대통령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늦은 밤, 국회 앞에서 탱크를 막은 민중의 저항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끔찍한 사태를 목격하고 있을까.
세계곳곳에서는 사실상 3차세계대전이 진행중이고, 대선후보시절부터 <북한선제타격>을 주창한 윤석열은 실제로 <충암파>와 함께 2024년 10월 평양무인기테러를 자작해 <전쟁계엄>을 모의했다. 2024년에만 한미합동군사연습이 최소 130회이상 실시됐다. 광복절축사로 <반국가세력>을 떠들어대며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주의를 적으로 규정했다.
이른바 <노상원수첩>에는 1만명의 민중을 <수거>한다는 끔찍한 계획이 담겨 있었다. 종이관 구매를 타진하고, 영현백을 수천개준비하며 대학살을 준비한 사실을 마주했다. 부패하고 무능한, 내란수괴 윤석열의 파면은 당연한 결과였다. 정의의 실현이자, 위대한 우리민중의 승리였다.
빛의 힘은 대단했다. 춥고 어두운 광장이 밝아졌다.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고, 광장에서의 헌법재판소의 파면결정이 나올 때, 우리는 혁명을 노래했고, 환호로 광장을 채웠다. 기쁨과 환호 속에서 우리에게는 다음과제가 제시됐다.
윤석열은 <다 이기고 돌아왔다>고 떠들었고 국민의힘은 내란잔당임에도 반성과 책임은커녕 대권을 넘보고 있다. 국회는 <내란>특검법을 끝내 부결시켰고, 윤석열이 심은 내란내각은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있다. 그들의 야망은 끝나지 않았다.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60년 이승만이 하야한 후 박정희·전두환파쇼독재의 탄생은 당시 지배세력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해서다. 박근혜 탄핵후 당명만 바꿔 살아남은 국민의힘은 결국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헌법 첫장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적혀있다. 4.19항쟁은 이승만파쇼권력을 몰아낸 민중의 승리였다. 민주주의와 조국통일을 외쳤던 그날의 목소리는, 지금 윤석열이 <반국가세력 척결>을 운운하는 모습속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윤석열의 파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세대는 달라졌지만 우리는 다시한번 증명하고 있다. 4.19민중항쟁으로부터 시작된 민중민주주의의 정신은 <빛의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구속하고, 내란잔당 국민의힘을 해체하는 일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첫 걸음이다. 빛을 지켜내고 이어갈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희망나비 대표


